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저자 : 윤동주
출판사 : 스타북스
- 저자
- 윤동주
- 출판
- 스타북스
- 출판일
- 2022.02.16
가벼운 글자
얇은 글자들의 모양새가 가볍게도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나의 머릿속을 이리도 무겁게 누르는 것일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세세히 보여준다. 시를 통해 본 윤동주는 서정적이고 세심한 성격이다. 또, 가족과 자국을 매우 사랑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 억센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며 일본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문화를 없애고 일본화를 강제하려 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총칼과 숨 막히는 최루탄, 찢기는 어느 여인의 살결, 그리고 아이들의 절박한 울음소리. 희망이 좀처럼 피어나기 힘든 시기에, 여럿은 일본에 순응했다. 그러나 윤동주는 끝까지 자신의 주관을 지켰다. 사회의 부당한 흐름과 비리, 그리고 모순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그는 시를 쓰며 의지를 굳건히 하였다. 일본의 압박은 요즘 말로 하자면 심리적 지배와도 같이, 제아무리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자들조차도 무의식 중에 찬성의 의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록 윤동주가 안중근이나 유관순처럼 온몸 바쳐 나라를 위해 물리적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적 운동을 반복하며 애국심을 유지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대단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시 세계는 자신의 도덕적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새삼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을 강하게 통제하면서도 가치관을 지키려고 하는 시인의 삶이 너무나도 대단하게 느껴져 거리감까지 들었다. 나라면 과연 그러한 시대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는 정적이 흘렀다. 차마 답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국가, 대한민국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은 물론 일본에 땅을 넘겨줄 마음이 쥐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나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을 옭아매면서까지 뚜렷한 자기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의 경우 이에 더해 국가 단위의 엄청난 사회 압박과 죽음의 가능성 또한 있었다.
윤동주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서시'에서도 드러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그에게 부끄러운 삶은 일제에 수긍하고 자국을 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부끄럽다'라는 말은 일상에서 느끼는 흔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사라지기까지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일삼는 것이라 해석됨이 틀림없었다. 저 앞 슈퍼의 주인아주머니와 눈을 마주 보고 동전을 주고받는 것이나 실수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발라당 넘어지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현재 조상들이 피와 살을 바쳐 지켜낸 대한민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서 얻은 교훈을 고이 간직하는 것뿐이다. 이 시집을 읽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내 생각과 의식, 가치관이 뚜렷하고 강한가? 더욱 살기 평안해진 이 삶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뚜렷한 가치관은 없다. 아니, '잘 모르겠다.'가 맞겠다. 그렇기에 부끄러운 삶이라는 것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형태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꾸준히 발생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 윤동주 시인처럼 내 의사를 똑바로 밝히고 쉽게 굽히지 않으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약 1세기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사회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어떤 것들은 더 심화하기도 했다. 아직도 친일 행위를 일삼으며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어째서인지 우리나라의 깊은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마치 그 시대 이인국 박사처럼 개인주의와 기회주의, 탐욕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 물들여진 늑대들이 빛나는 보석만을 갈구한다. 1세기 전과 똑같이,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인 중 누구는 한국이 일본 땅이며, 일본화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동요하는 이들 또한 남아있다. 윤동주는 자연을 좋아했지만, 불행히도 현재, 예쁜 꽃이 심어진 잔디밭에 질겅이던 껌을 뱉고 가거나 그저 숨을 쉬고 있던 죄뿐인 나무들을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듬성듬성 베어버린다.
몇 달 전 학교에서 잠깐 일본과 한국의 과거에 관해 얘기가 나왔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친구 A는 대뜸 '그래도 일본 덕분에 일제 강점기 거쳐서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게 된 거 아니야? 고마워해야 할지도. ㅋㅋㅋㅋ' 하며 장난식으로 낄낄댔다. A의 예상치 못한 말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당황하며 '하하하' 거짓 웃음을 짓고는 황급히 주제를 다른 것으로 틀었다. 나도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그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때 그 친구에게 제대로 된 역사 상식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고, 현재까지도 그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스테이플러로 박은 듯 아프고 따갑다.
오늘날, 나는 뉴스나 기사뿐 아니라 학교 가는 길,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도 흔하게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면한다. 부끄러워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쯤 생각을 정리하자 나는 다짐했다. '그래, 비록 윤동주 시인의 경지까진 갈 수 없더라도 옳지 못한 것에 쉬이 순응하지 않아야겠다.'라고.
누군가 옆에서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를 사실인 양 퍼뜨리고 다닌다고 한다면, 내 앞의 선생님이 선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근거로 나를 억누르려 한다면, 경제적 이득만을 바라보며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면, 부끄러움 없이 내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리라.
때로는 나의 의견을 굽히고 상대의 말에 더 많이 경청하는 것이 이득이 될 때도 있다. 사람은 그러면서 여러 방면으로 성숙해지고, 해박해진다. 나의 부끄러움이 없는 삶은 '무조건 순응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옳지 못한 것에 쉬이 순응하지 않겠다.'이다.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고, 윤동주와 같이 지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다.
무거움에 지쳐있던 내가 눈을 뜨자, 무슨 연유에선지 그 돌덩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내 앞에 놓인 것은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글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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